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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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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마테르 전쟁]]의 전반부(개전 ~ 동맹국 참전 시점까지)를 다루는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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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bgcolor=#fff,#212121><nopad> [[파일:마베라지도.png|width=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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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bgcolor=#536349> '''{{{#fff 라 마베라 왕국의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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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침공 후 일주일, 40년전의 악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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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전쟁의 첫 포성은 웨스타시아가 가져갔다. 1984년 2월 22일 오전 5시, 최후통첩 기간이 만료되자마자 웨스타시아 전군에 '할아버지가 살아나셨다'라는 역사적인 개전암호가 타전되었다. 4시 3분경, 럭샤슨호르스트급 2번함 시후니제나우의 11.1인치급 주포가 에스타뉴산 너머를 향해 전쟁의 첫 번째 고폭탄을 쐈다. 이윽고 김용하 장군 휘하의 13개 포병연대와 그 유명한 구스타프 III급 열차포 6문이 포격전에 동참하고 동쪽 하늘의 기울어가는 달을 까맣게 가린 공군의 전폭기들이 에스타뉴산을 넘어왔다. 마베라 국왕 샹페드로 4세가 개전 사실을 보고받았을때는 이미 6,900발의 포격이 산맥 너머에 내리꽂힌 뒤였다. 한편 에스타뉴산을 넘어온 웨스타시아 공군은 할레프 공중전에서 마베라 공군을 궤멸시킨뒤 제공권을 장악, 마베라 서부의 모든 땅에 폭격을 가했다. '쿤타치 작전'이라 명명된 이 작전은 웨스타시아의 7일 전쟁 계획에 기반을 둔 사전 초토화 작전으로, 지상군이 병력을 전개하기 전에 전 마베라 영토의 거의 모든 기반시설, 인프라, 군사시설을 모조리 파괴시켜 3일 트리넬 진격을 가능케 하는것이 요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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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전 3일째, 포격과 폭격이 잠잠해짐과 동시에 반 폐허가 된 트리넬 국제공항에 [[부르군트 작전|웨스타시아의 13개 공수여단이 투하됐다]]. 웨스타시아 공수군은 전차바퀴보다 큰 모든것을 싹다 죽였다. 샹페드로 4세와 왕가는 당초 수도를 지킬려 했지만, 왕궁의 코앞까지 공수부대가 진격해오자 어쩔 수 업이 몬타나시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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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한편 마베라 군부의 모든 이목이 수도에 몰려있는 사이, 25일(개전 4일째) 3시경 한랜드 제6,9,7군이 니베스 시에서 마베라군 제44사단을 괴멸시켜버린 것을 시작으로 웨스타시아 육군이 마베라 남부지방을 파죽지세로 밀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쿤타치 작전의 후속으로 기획된 '바로바로싸 작전'의 요지는 일단 서부전선 중간에 위치한 369고지를 점령해 마베라 수비군을 동서로 분단, 양군의 전략적 연계를 끊은 뒤 둘로 분단된 마베라군을 베타와 감마 집단군이 해안과 산맥으로 밀어 포위섬멸하고 그러는 동안 알파 집단군은 최대한 신속한 기갑웨이브로 트리넬까지 진격해 공수군과 합류, 트리넬 시를 점령하는 것이었다. 마치 40년전의 그 나라를 보는듯한 경의로운 진격속도로 웨스타시아군은 공격 이틀만에 369고지를 점령했고, 마베라의 전력은 그들의 계획대로 동서로 갈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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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이제 남은것은 쌍두가 된 참새의 대가리를 잘라버리는 것이었다. 동쪽의 마베라 제1,9,7군은 바르디야 전투에서 김용하 장군 휘하의 감마 집단군에게 몬타나 산맥에 포위되어 전멸해버렸고, 서부의 가다메스 수비군은 남쪽에서 몰려온 베타 집단군과 해안가를 선점한 한랜드 2군단에 의해 아게다비아 강변 방면으로 포위되어 포로 한명 없이 몰살되었다. 11사단장 시디 바라니 소장은 3시간 가량의 테르하판 전투에서 마지막까지 항전했지만 결국 웨스타시아군을 막을 순 없었다. 참새의 쌍두가 잘리면서, 이제 서부전선에 알파 집단군을 막을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트리넬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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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전 5일째, 연방방위부 국장 직권으로 화학무기 사용이 허가됐고, 그날 오후 9시경 루프트바페는 맛보기삼아 마네레 시에 스타인먼 화학이 갓 만든 사린, 소만, VX, 겨자가스 등의 대규모 화학무기 공습을 가했다.[* 이딴 짓이 가능했던 이유는, 웨스타시아 민족도 엄연한 아틀란티스 민족의 후손이라 태생적으로 화생방에 강한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베라에도 웨스타시아인들이 적지 않은수가 존재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추방당한지 오래였다. ] 그곳은 마베라군의 남부주 사령부, 일명 맘무트 요새가 있던 도시였다. 이 화학탄 공습에서 도시를 수호하던 제21연대는 6시간만에 전 병력 7만명중 2,300명을 빼고 전멸했고, 몬타나주 사령부는 모두 포로가 되어 마베라 동부 야전군에 거대한 지휘 공백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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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맘무트 요새로 총사령부를 이전한 웨스타시아 군부는 마네레의 뽕맛을 잊지 못하고 2월 26일(개전 6일째)부터 4달에 가까운 시간동안 서부전선 전역에 화학탄 폭격을 가했다. 지속된 가스폭격으로 인해 빈사상태가 된 마베라군을 한랜드 전차부대가 1차로 빠르게 쓸고 간 뒤, 독가스가 어느정도 가라앉으면 후속 보병부대가 2차로 남은 잔당들을 청소하는 전투양상이 수도에 도달할 때까지 쭈욱 반복됐다. 그것은 그야말로 역사에 남을 기동전, 일명 '전격전'이 반백년 남짓한 세월을 넘어 가장 끔찍한 형태로 부활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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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결국 2월의 마지막날이자 개전 7일째 되던 1983년 2월 29일. 남쪽에서 달려온 알파 집단군이 트리넬에 도착함과 동시에 마베라군은 수도를 포기하고 후퇴했다. 델레스, 외스테젠 시는 베타 집단군에, 자오그란트 서부와 켈로마 시는 감마 집단군에게 점령당했다. 노르드란트는 후술할 해상봉쇄에 의해 고립되어 죽어갔다. 29일 오전 11시경, 트리넬 왕궁에 백십자기가 올라갔다. 그야말로 완벽한 웨스타시아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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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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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교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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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일간의 천지파괴가 끝나고, 전장에 새로운 해가 밝았다. 트리넬, 아릴레지아와 마베라 서부의 대부분은 웨스타시아 손에 떨어졌고, 왕가와 군 수뇌부들은 동부의 임시수도 몬타나로 거처를 옮겼다. 2월 30일 오전 8시경 왕가를 태운 C-130 수송기가 세누시 국제공항에 내리고, 임시수도에서 하는 첫 어전회의가 시작됐다. 마베라는 이제 선택을 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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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군부는 둘로 나뉘었다. 육군의 니콜라 드 몬테 소장을 주축으로 한 협상파, 해군의 마르사 엘 브라가 제독을 중심으로 한 항전파가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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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먼저 협상파의 니콜라 소장은 조건부 항복을 주장했다. 83년 여름 시점에서 이 주장은 꽤 타당해보이는 주장이었다. 당시 마베라는 도저히 이길 가망이 없어보였다. 국토의 대부분은 한랜드에게 먹혀버린지 오래고 최전방의 3개 집단군은 전멸, 잔존 병력들은 뿔뿔히 흩어져 각개격파된지 오래라 꿈도 희망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 상태로 항전을 계속하다 한랜드군이 동부까지 밀고들어오면 나라고 머고 왕가의 목부터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개전 연설에서 드러났듯 웨스타시아의 목표는 완전 점령이 아닌, 몬타나 이북의 광산들과 중부의 공업지대들이었다. 때문에 협상을 통해 이것들을 때주면 나라의 명맥이라도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니콜라 소장의 주장은 얼핏보면 그럴듯했다.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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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이쯤에서 웨스타시아의 전쟁 계획을 다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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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우선 첫째날, 둘째날에는 공군과 포병대를 이용한 대규모 초토화 작전([[쿤타치 작전]])으로 마베라의 모든 군사적 인프라(특히 방공망)를 파괴함과 동시에 한랜드군의 주특기 공중전으로 제공권을 장악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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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셋째날엔 장악한 공중을 통해 트리넬에 공수부대를 투입([[부르군트 작전]]), 국경선에 집중된 마베라측 병력을 수도로 교란시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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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넷째날에는 국경 방비가 허술해진 틈을 타 본격적인 공세를 시작([[바로바로싸 작전]]). 육군 320만을 북으로 진격 후 종심작전을 '''적절히''' 활용해 '''3일 안에''' 트리넬을 완전히 점령 후 '''항복문서를 받아낸다.'''
37여기서 중요한것은 마지막의 ''''3일 안에 항복문서를 받아낸다'''' 부분이다. 브라가 중장이 꼬집은 SB계획의 유일한 허점은 이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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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당시 마베라는 버블 붕괴 이후 잿더미가 된 웨스타시아에서 차량산업을 줍줍했기에[* 전자산업은 일본이 가져갔다.] 전국에 자동차 공장지대가 무수히 흩어져 있었고, 이를 뒷받침할 각종 노천광산들도 남부 몬타나 산맥 부근에 다수 포진해 있었다. 차량 공업이 활성화되어 있다는 것은 곧 땅끄 물량이 어마어마하다는 뜻이었다. 반면 웨스타시아는 버블 붕괴의 후유증이 아직 가시지도 않은 시점이라 전반적으로 공업력도 딸리고 인구 자체도 딸렸다. 마베라 영토의 반을 먹었지만[* 말이 반이지, 실제로 점령지의 유지와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에 실제로 점령한 영토는 극히 일부라 봐야 한다.]먹은 영토의 대부분은 서부 평원의 곡창 지대였고 전쟁의 목표인 아크다르 산맥 너머의 공업지대과 광산들은 여전히 마베라의 손. 반년 전부터 총동원령으로 억지로 공업력을 짜내서 80만 전차대군을 만들어냈지만 결국 장기적으로 봤을때 질적/양적으로 밀리는건 웨스타시아였다. 즉, 마테르전은 기본적으로 장기전으로 갈수록 마베라가 유리해지는 그림이었다. 앨빈 대통령은 이걸 알았기에 7일이라는 역사상 전무한 짧은 시일안에 최대한 빨리 수도를 점령해 왕가를 협상 테이블로 불러 목표물을 쟁취, 초단기로 전쟁을 끝내는 구상을 짰던 것이고, 만약 계획된 시한안에 전쟁을 끝내지 못한다면 모든것이 잘못되는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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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또한 브라가는 파시즘 국가의 특성을 고려하면 공업지대를 내주고 정전을 하더라도 웨스타시아는 결국 언젠가 다시 쳐들어올것이라 예측했는데, 이 상황에서 만일 웨스타시아와 정전 협상을 할시 적에게 꽤나 큰 영토를 때주는건 둘째치고 점령한 서부의 광대한 곡창지대에서 나온 농산물들을 수출해 경제회복 및 중공업을 재건할 시간을 제공, 향후 10,20년안에 일어날 2차 전쟁에 크나큰 고지를 내어주는 거나 다름업다는게 브라가 제독의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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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국왕은 브라가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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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83년 3월 1일. 마베라 외무성은 웨스타시아의 협상 제의를 거부했다. 앞서 말한 대로 최대한 빠른 종전을 원한 웨스타시아는 약간 당황했다. 한편 웨스타시아군 점령지에서는 잔존 마베라군들을 토벌하기 위한 산발적인 교전을 계속하느라 진격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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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또한 83년 3월부터 마베라군은 자오그란트 동부, 나르덴, 노르트란트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광할한 길이의 참호선을 건설했다. 마침 3월 3일부터는 2월에 끝났던 장마가 다시 찾아와 전선 전역이 진흙으로 뒤덮혔다. 3주간 이어진 장마로 땅이 질척거려 땅끄들이 진격을 못하니 한랜드군의 전격전 전술이 돈좌, 공세가 막을 내리고 전선이 고착화되었다. 당황한 한랜드군은 전쟁 전에 연구해뒀던 인공강우 프로젝트 '나푸사 작전'을 실행, 600만톤이 넘는 HINA 분무액[* 웨스타시아 연방 기술개발부 소속 R.J. 라인하르트 박사가 개발해낸 물건으로, 본디 수증기 결집용 원소로 아이오딘화'''은'''을 뿌려야 했기에 비용이 천문학적이던 인공강우 기술을 기존의 7분의 1 비용으로 쓸수있게 해준 용액이다. ]을 전선에 뿌려 공기중 수증기를 한방에 응결, 3~4일만에 장마를 끝내려 했지만 계산 실수와 마베라 정보부 & 루이나 MIA의 분무액 생산라인 사보타쥬[* HINA 분무액의 생산은 스타인먼 화학이 담당했는데, 본토의 공장들은 독가스 만드느라 이미 바빠서 주로 점령지의 로동력을 이용해 분무액을 생산했던게 화근이었다. ]가 겹쳐 뿌려진 불량용액이 역효과를 유발. 예보대로면 3월 중순에 그칠 예정이던 장마가 7월까지 연장되버리는 참사가 발생했다. 굳은 날씨때문에 그렇게 한달내내 내린 장마로 양측의 기갑 전력들이 대부분 봉쇄되어버리면서 남은건 보병부대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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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그렇게 솔로몬, 마슈레텐, 에크레멘 전투에서 1차대전 이후 봉인되어있었던 참호전이 반백년의 세월을 넘어 부활하고야 말았다. 웨스타시아군은 여전히 미미하게 공세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3달이 넘는 기간동안 전선에 변화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 하루에 수킬로미터 진격에 그쳤으며 가끔은 몇미터씩 진격했던 때도 있었다. 이런 질척이는 전황은 솔로몬 공방전에서 정점을 찍었는데, [[솔로몬 포위전|도시 하나 먹는것]]에 양군 총합 '''30만명'''[* 민간인 피해를 제외하고 30만명이다.]의 희생자가 발생할 정도였다. 이렇듯 양측의 손해가 극심했기에, 브라가 제독은 쏟아지는 반전 여론에 한동안 경질당할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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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수면위의 모든것은 웨스타시아의 적" ==
52이제 난감한 쪽은 웨스타시아였다. 당초의 7일 전쟁 계획은 물건너간 상황에서, 병사와 물자들은 계속 갈려나가고 있는데 장마로 더이상의 진격도 불가했다. 현 시점에서 가능한 수는 그저 7월에 장마가 끝날 때까지 버티다 땅이 건조해졌을때 다시 진격하는 것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마베라 측은 곡창지대를 잃었음에도 NLTO에서 들어오는 원조가 워낙 막대했기에 오랫동안 버틸수 있었지만, 웨스타시아 측은 기껏얻은 곡창지대를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지출을 해야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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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한편 지상에서 육군과 공군이 고생하는 동안 해군쪽은 내심 불만이 쌓이고 있었다. 전쟁 초반 한랜드 육군과 공군이 트리넬을 향해 쫙쫙 밀고가면서 전승훈장 여럿따고 있을때[* 물론 이건 해군 입장에서 그렇게 보였다는 거지, 상술했듯 육지쪽은 실제론 처음 한달 이후론 지옥같은 참호전에 빠진지 오래였다. 전승훈장을 많이딴다는건 그만큼 병사가 많이 갈려나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해군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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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이미 전쟁 전부터 한직 취급이었던 수상함대는 전쟁 초반에 갈려나가 비중이 공기가 된지 오래고, 그나마 물량이 많았던 잠수함대쪽은 2달동안 왕립해군을 겨우겨우 궤멸시켰더니 대중들은 육지 전황에만 관심있고, 바다에선 아직도 미사일고속정 짤짤이들과 육지에서 탈출한 마베라 수송함대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와 정신은 하나도 없는 와중에 예산은 여전히 쥐꼬리만한 괴악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애초에 해군 입장에서는 육군 및 공군 주도로 개전한 이 전쟁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존심 크리티컬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전쟁의 주인공이 되길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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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알렉산더 S. 퍼킨 잠수함대 제독은 이 두 문제의 답을 알고있었다. 83년 4월 13일, 퍼킨 제독은 상부에 '브루스파팅턴 계획'의 보고서를 제출한다. 요지는 현재 가용가능한 모든 잠수함 전력을 총동원해서 마베라 연안을 지나는 모든 선박[* 민간선박이든 타국선박이든 상관없었다. ]을 보이는대로 격침. 마베라의 밥줄인 서방 원조를 아예 끊어버려 완전히 고사시켜 버리는 것과 그것을 대규모 해군증강을 포함한 계획이었다. 누가 봐도 원조집이 어디인지는 뻔히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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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반대파는 물론 어마어마했다. 이 전략의 원조집은 이걸 과하게 쓰다가 잠자던 호랑이를 건드려 패망했던 역사가 있으니 자명한 결과였다. 특히 해군이 이 전쟁에서 계속 쩌리로 남길 바랬던 육군은 외교적 리스크를 이유로 들며 끝까지 결사반대를 외쳤지만, 결국 총사령부 입장에선 이외엔 마땅한 방법도 없었기에 작전 시행을 막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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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계획의 가장 큰 난점은 마베라해의 해저도시 노스리지 자유시를 차지하고 있던 신동경이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그곳은 NEDP 인사들과 몇몇 강대국들의 첩보기관들을 제외하면 육상 세계에 거의 알려진게 없는 미지의 땅이었는데, 당시 웨스타시아 군부에서 알고있는 거라곤 NEDP의 소굴이라는 점과 웨스타시아와 같은 민족이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당시 고고학자들이 유고랜드에 남아있던 유적들을 조사해서 알아냈던 것은, 과거 웨스타시아인과 오스탈로스인은 한민족이었다가 약 2800년전에 전쟁으로 갈라져나온 사이였다는 사실이었는데, 문제는 웨스타시아 측에선 이걸 신동경측이 아는지 모르는지 알길이 없었다. 만약 신동경측이 이걸 알고있다면 무제한 잠수함 작전은 실상 실패로 돌아가는 상황에서, 웨스타시아군은 실상 도박에 가까운 수를 던진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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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2><bgcolor=#fff,#212121><nopad> [[파일:카푸초격침.jpg|width=100%]] ||
65||<-2><bgcolor=#536349> '''{{{#fff 어뢰에 맞아 폭발하는 카푸초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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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RMN 카푸초(Capuccio)함은 마베라 해군(Maberra Royal Navy, RMN) 소속의 순양함으로, 4월 24일 마베라 국영방송에서 진행되던 선전 생방송 도중 웨스타시아 해군 소속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아 격침되었다. 해당 방송은 마베라 전역에 생중계되고 있었으며, 어뢰 피격과 함정 침몰 장면이 실시간으로 송출되면서 국민적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마베라 국내에서는 전쟁 지속에 대한 회의론과 항복 요구 여론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해당 생방송이 송출된 이후로 마베라 해군의 활동이 급격히 감소하였다[* 당시 마베라 해군의 두려움은 상당했는데, 당시 음탐부사관이 과도한 스트레스로인한 정신병으로 의가사 전역할 정도였고, 근해에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 함대 전체가 꽁지가빠져라 도망쳤다, 후에는 이런 사실을 인지한 웨스타시아 해군이 해당 소음을 직접 녹음해서 소형 수중드론에 매달아서 마베라 해군을 겁주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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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루이나]]의 1차 경고 ====
70>루이나 공화국 외교부는 웨스타시아 해군이 실시 중인 소위 '''"브루스파팅턴 작전(Operation Bruce-Partington)"'''[* 당시에는 작전명이 공개되지 않았었는데 루이나가 경고의 의미에서 작전명을 공개한것으로 보인다.]이라 불리는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강력히 규탄한다.
71>
72> 본 작전은 민간 해역과 군사적 긴장 완화 구역을 불문하고 모든 선박을 적대적으로 간주하고 격침 대상으로 삼는 비인도적 전략으로, 국제 해양법과 무력 충돌 규범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행위이다. 특히 4월 24일, 마베라 해군 소속 카푸초(Capuccio)함이 선전방송 생중계 중 어뢰 공격으로 침몰한 사건은 해당 작전의 비겁함과 도발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73>
74> 루이나는 웨스타시아 측에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75>
76> 1. 브루스파팅턴 작전의 즉각적이고 조건 없는 중단을 요구한다.
77>
78> 2. 해양에서의 민간 및 중립국 선박에 대한 공격은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을 초래할 수 있음을 명백히 경고한다.
79>
80> 3. 루이나는 자국 및 동맹국의 항행의 자유를 수호할 권리와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필요 시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다.
81>
82> 루이나 정부는 평화와 국제질서를 중시하며, 어떠한 형태의 해상 도발에도 단호히 대응할 것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83>----
84> 루이나 외교부의 웨스터시아에 대한 1차 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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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개무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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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하지만 웨스타시아 측은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루이나 외교부의 경고를 무시했고, 의외로 루이나 해군이 별 움직임을 보이지 않음에 따라[* 사실 이럴수밖에 없었는데... 당시 루이나 해군 상부는 웨스타시아의 잠수함 전력을 과대평가 하고 있었다. 마베라 해군의 카푸초함은 루이나의 플라자 그룹에서 최신 대잠전 사양으로 업그레이드를 한 함선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수출용 프로그램은 다운그레이드 버전인데다가 마베라 해군의 군 기강의 해이함과 오랜 평화로 인한 장비 점검 불량으로 장비의 성능에 불문하고 격침당할 운명인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같은 일을 루이나 해군 상부에서 속속들이 알고있기란 불가능했고, 웨스타시아 잠수함에 대한 제한적 대잠 작전만을 승인했었으나 이마저도 곧 종료하게 된다. ] 웨스타시아 해군은 의외로 순조롭게 마베라 근해의 재해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5월 초부터 마베라해는 완전한 죽은 자들의 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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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봉쇄의 효과는 굉장했다! 서방의 원조만으로 실상 버티고 있던 마베라는 봉쇄시작 몇주만에 빠르게 무너져내렸다. 당시 마베라가 버티고있던 동부주들은 대부분이 더운 사바나 기후 + 장마로 햇빛이 안듬 크리로 도저히 농사를 지을땅이 안 되었던 데다, 대부분의 비축미들은 서부에 있었던 탓에 마베라는 빠르게 아사해가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아사자들과 거지들이 넘쳐났고, 끊임없이 오는 공습은 하나의 거대한 절망덩어리를 형성했다. 그렇게 7월이 되자 서서히 장마도 그치고, 웨스타시아군은 다시 진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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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말 그대로 망국 직전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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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왕가의 분전 ==
94마베라는 상 페드로 왕가(House of San-Pedro)가 통치하는 왕정 국가로, 전면전 발발 이후 왕실은 단순한 상징을 넘어 직접 전장에 참여하는 이례적 결단을 내렸다. 국왕 상 페드로 3세(San-Pedro III)는 전황이 불리해지자, 자신의 직계 자녀들에게 실질적인 군 지휘권을 부여하며, 왕실이 국민과 함께 싸울 것임을 공식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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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마베라의 아들딸들이여.
97>
98> 나, 상 페드로 3세는 오늘 이 자리에서, 국왕으로서가 아니라, 이 땅에 생명을 바친 모든 가문의 아버지로서 말하노라.
99>
100> 우리가 맞선 전쟁은 단지 국경의 다툼이 아니다. 이는 우리의 언어를, 우리의 신을, 우리의 기억을 지우려는 자들에 맞서는 싸움이다.
101>
102> 그러므로 왕관은 더 이상 성벽 뒤에 머무를 수 없다.
103> 나의 자식들—라파엘, 칼레드, 팔라스, 그리고 나디아—이 네 사람은 오늘부로 군의 부름을 받아, 각자의 자리에서 병사들과 함께 땀과 피를 흘릴 것이다.
104>
105> 나는 아버지다. 그들을 보내는 내 마음이 무겁지 않다면 거짓이리라. 그러나 나는 또한 왕이다. 피는 높이 흐르지 않고, 낮은 곳으로 흘러야 그 가치를 가진다.
106>
107> 왕의 자식은, 가장 먼저 총을 들어야 한다. 왕의 집은 가장 늦게 불타야 한다.
108>
109> 그대들도 나와 함께 싸워다오.
110> 이 전쟁은 모든 가문의 전쟁이니, 모든 피의 헌신이 존귀할 것이다.
111>
112> 신께 맹세하노니, 마베라는 무너지지 않노라. 왕관은 피로 지켜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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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왕세자 라파엘 페드로(Rafael Pedro), 칼레드 페드로(Kàled Pedro), 팔라스 페드로(Falas Pedro), 그리고 공주 나디아 페드로(Nadia Pedro)는 각각 해군, 육군, 병참, 공군 부문에 배속되어 작전에 투입되었으며, 이들의 활약은 ‘왕가의 분전(Royal Resistance)’이라는 표현으로 불리며 대중적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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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특히 왕족이 직접 총을 들고 전선에 나선 사실은, 전황이 불리한 가운데서도 마베라 국민의 사기를 크게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전국 곳곳에서 자원입대가 증가하고, 국왕에 대한 충성 서약과 시민들의 자발적 구호활동이 이어졌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신이시여 우리 왕을 도우소서”라는 구호가 민병 조직의 표어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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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그러나 전황이 악화되면서 라파엘 페드로와 칼리드 페드로는 각각 북부 해역과 서부 전선에서 전사하였다. 이들의 죽음에 마베라 국민들은 분노하였고 떨어져가던 사기가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119> “마베라의 백성들이여.
120>
121> 나는 지금, 아버지의 심장으로 이 말을 전하노라.
122>
123> 나의 장자 라파엘은 북부 해역의 칠흑 같은 밤 속에서, 함대를 지휘하던 중 적의 어뢰를 맞고 바다에 잠겼다.
124> 나의 차남 칼리드는 제23 기갑여단과 함께 중부 전선의 사막에서 포화를 뚫고 전진하던 중, 장렬히 산화하였다.
125>
126> 이들은 왕위 계승자였고, 피를 이은 내 살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들은 마베라의 병사였다.
127>
128> 나의 자식이 죽었다는 사실은 한 가정의 비극이 아니다. 이는 왕실의 의무가 말이 아닌 피로써 증명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라 믿는다.
129>
130> 나는 결코 통곡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눈물이 적에게 위로가 될 수는 없기에.
131> 그러나 나는 기억할 것이다. 두 왕자의 이름은, 앞으로 마베라의 역사서에 불멸로 남을 것이다.
132>
133> '''모든 깃발은 조기를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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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모든 종은 96번을 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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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모든 자는 이 전사를 명예로 기억하여라.'''
136>
137> 백성들이여,
138> 왕실은 피를 흘렸다. 이제 그 피는 마베라의 흙 속에 섞여, 이 땅의 일부가 되었다.
139>
140> 신께 맹세하노니, 이 전쟁은 우리의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계속될 것이다.
141> 왕관은 아직 전선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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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분류:랜드사]]